"똑똑똑" "계시요?"
"네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이거 오늘 며느리 와서 주고 가져왔어. 이건 양념 많이 들은 것이고, 이건 조금 덜 들은 거. 먹으라고"
옆집 할머니가 김장을 했다고 두 봉지를 가져 오셨다. 아마 우리 집에 노크한 일은 처음 일 것이다. 마당에서 보면 인사하는 수준이었을 뿐 별다른 교제를 나누지 못했다. 혼자 사는 걸 알고 있는 건지 비닐에 담은 김치를 가져왔다.
지난번 아들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원래는 이 근처에서 집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며느리가 와서 돈을 빌려 달라며 하는 바람에 집을 팔고 월세방인 이곳으로 이사 온 곳이다.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아들은 하나인 듯하다. 그러니 며느리가 당당하게 시어머니를 찾아와 돈을 빌려 달라고 하지.
며칠 전부터 마당이 조금 어수선했다. 가끔 있는 일이라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제는 의외로 많은 배추잎을 마당에 말리고 있었다. 김장을 하고 남은 겉절이 배추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김장을 했으리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혼자 사시는 분이 무슨 김장할 게 있다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방금 김치를 주고간 뒤에야 어수선했던 이유를 알게 된 것이다. 아들 내외를 준다면 김장을 한 것이다. 굽은 허리로 언제 배추를 사 왔는지, 다른 양념은 어떻게 준비한 것인지 도통 알 길은 없다. 하지만 15평 정도의 집에서 혼자 살아가니 집은 좁지 않으리라. 거실에서 몇십 포기는 충분히 김장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틀 정도 할머니 집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의외로 많이 들렸다. 가끔 놀러 오는 친구들이거나 동사무소의 직원이라 생각했는데 김장을 한다고 친구분들을 부른 듯하다.
경상도 김장맛을 아는 지라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닐을 열자 젓갈 냄새가 약간 스며 나와 혹시나 했는데 먹어보니 역시다. 밋밋한 맛이 강하고 깊은 맛이 없다. 그래도 일반 김장에서 비해선 그런대로 잘하는 편이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울까? 아마도 아들에게도 적지 않은 서운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없이 자란 아들을 뭐라 할 수는 없고, 며느리만 욕을 한다. 아마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수입은 없고, 달랑 집 한 채 있는데 그것을 달라고 했으니. 미워도 어쩌겠는가. 분명 아들도 개입을 했을 테니. 할머니는 아들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지만 서운한 감정은 감추지 않았다.
그래도 아들 내외를 위해 김장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불러 담음 김장을 주었을 것이다. 문득 어제 '어머니'란 말이 유독 들리는 것을 보니 그 여성은 며느리였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남성 목소리도 들었는데, 그는 아들이었을 것이다. 알 수는 없다. 멀리서 들은 소리고 주의 깊게 듣지 않았으니. 아마도 소를 넣을 때 아들 내외가 왔다면, 김장을 마치고 같이 밥을 먹고 갓 담은 김장을 담아 아들 내외를 보냈을 것이다. 8시경 인사하는 남성과 여성이 차문을 열고 인사하는 소리가 그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지만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주고 자신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간다. 옆집 할머니가 기초 생활 수급자라는 것도 이틀 전에 물세를 계산하면서 주인 아저씨에게 들은 거다. 한 달에 불과 몇십만 원 받으며 살아가는 신세가 된 지금 어찌 며느리가 밉지 않으랴. 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다. 김장을 해서 아들 내외를 불러 함께 치대고 밥을 해서 먹이고 김치를 담아 보냈다.
이러한 사정을 알고나니 마음이 짠하다. 어쩔 수 없는 부모구나 싶은 생각에 그녀의 아들 내외가 미운 생각이 든다.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지만 굳이 하나뿐인 집까지 빼어야 했을까? 할머니 말로는 남편이 교사를 하다 은퇴하고 남은 것은 고작 집 한 채였다고 한다. 얼마 가지 않아 남편은 죽고 할머니 혼자 남은 것이다. 남편의 유산인 집까지 모두 자식에게 주고 말았으니 그 허한 기분은 어떨까.
자식은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부모의 속을 모른다. 아니 부모가 되어도 자신의 부모는 이해하지 못한다. 철없는 나의 아이들을 보니 갑자기 답답해진다. 나도 아이들에게 옆집 할머니같은 사랑을 베풀 수 있을까?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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