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면 글쓰기 실력이 느나요?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분들이 종종 하는 질문입니다. 당연히 늡니다. 어느 정도까지만. 사실 어느 정도까지 올리는 것도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어느 정도란 자신의 생각을 막힘없이 써 내려가는 수준을 말합니다. 그 생각 깊든 옅든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 거기까지만 일기 쓰기의 효능입니다. 물론 일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서운하죠. 더 많은 것을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일기 쓰기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지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여기까지는 부분에 집중해 봅시다.
일기는 말 그대로 자신이 하루동안 지나왔던 일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단지 기록이든, 생각이든, 감정이든 말이죠. 기억을 더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또한 기억을 해석하고 재정립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저도 일기를 쓸 때 세세하고 꼼꼼하게 쓰기도 하고, 단지 몇 글자로 마무리하기도 합니다. 대체로 기록형 인간이란 일과를 연대기적으로 적을 때가 많습니다. 굳이 이렇게 적는 이유는 후에 어떤 일을 회상하거나 글을 쓸 때 정확한 날짜나 감정, 생각들을 참고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즉 글감으로서 일기의 필요성이죠.
그러니까 일기를 쓴다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고, 모든 글쓰기의 기본 또는 경험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깁니다. 일기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쓰기 때문이죠. 그렇다 보니 논리도 없고, 두서도 없고, 그냥 막 씁니다. 또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말한 것처럼 붓 가는 대로, 손이 가는 대로, 생각이 가는 대로 씁니다. 일종의 프리라이팅이죠. 생각으로 문자로 바꾸는 훈련은 좋지만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글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는 소중한 글이지만 독자들에게는 무의미한 글이 되기 일쑤입니다.
아래의 사진을 보십시오. 저는 종종 산책을 하며 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정말 평범하고 무의해 보이는 사진입니다. 만약에 이 사진이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이 어릴 적 살았던 집이라면 어떨까요? 완전히 달라지지 않나요? 건물에 스토리가 입혀지고, 플롯이 만들어집니다. 즉 이야기가 있는 건물이 됩니다.
좋은 글이란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 경험이 녹아든 글이어야 합니다. 또한 글 쓴 이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일기도 그렇지 않나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일기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과 같습니다. 글쓰기를 굉장히 고상하고 고결하게 생각하는 분들은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글도 포장되어야 하고, 철저히 아름답게 꾸며져야 합니다. 즉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습니다. 쉽게 말해 일기가 단지 주저리주저리 자신의 생각이나 고민만을 털어놓은 글로 끝난다면 거기까지만 완성된 것입니다. 그런 일기를 다듬고 포장하여 멋지게 보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다이아몬드 원석이 가치가 있어도 세공사가 어떻게 세공하느냐에 따라 수십 만원 짜리가 되기도 하고 수억이 되기도 합니다. 이게 글쓰기의 힘입니다.
나는 참새를 보았다와 나는 참새를 보고 울었다는 다릅니다. 사실과 사건에 인과성을 부여하고, 자신의 경험과 해석이 추가됨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글쓰기 실력을 높이면 자신만의 일기에에서 이야기가 있는 글로 나가야 합니다. 좋은 일기는 사실에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일기를 계속 그렇게 쓰라는 뜻이 아니라, 글쓰기 실력을 높이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오늘도 공원을 돌았다. 9시에 나가 집이오니 10시였다. 매일 한 시간 공원을 돌고 오니 5천 걸음이다. 이렇게 한 달만 하면 지금보다 5kg은 더 빠질 것 같다.
여기에 스토리를 집어 넣어 보겠습니다.
집을 나섰다. 만보기를 앱을 보니 아직 456걸음이다. 5천 걸음을 채우려면 4,500걸음은 더 걸어야 한다.
두 달 전, 3년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약간 살이 찐 나의 모습이 좋았다고 했다. 연봉도 5000 정도니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었다. 여자 친구는 만족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3년을 사귀면서 여자 친구는 점점 멀어져 갔다. 내 연봉이 거의 오르지 않은 것도 한 몫했지만 문제는 내가 운동을 너무 하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다. 물론 그것을 헤어질 때 말해서 알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전 여자 친구는 종종 나와 산책을 가자고 말했고, 카페나 영화관보다는 강화도나 소래포구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가기 싫었다. 대부분 거절했고, 어쩌다 한 번 갈 때도 나는 걷기 힘들다고 카페에 죽치고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때마다 여자 친구는 짜증을 냈다. 이미 결혼 날짜까지 잡은 마당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결혼을 석달 앞둔 두 달 전, 여자 친구는 결국 이별을 통보했다. 돌아보니 내가 너무 게을렀다. 아니 이미 결혼까지 약속한 탓인지 여자 친구를 너무 편하게 대했고 배려하지 않았다. 이별을 통보받고 며칠을 충격에 휩싸여 울었다. 정확히 일주일 뒤, 나는 저녁이 되면 집을 나서서 운동 겸 산책을 시작했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서,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이다.
벌써 땀이 흐른다. 어제 저녁부터 땀복을 입고 운동을 시작했다. 설마설마했지만 의외로 효과는 좋았다.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열기는 그대로 몸에 남아 공원을 두 바퀴 돌고 나면 땀이 범벅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몸무게를 보니 석 달 전보다 4kg 정도가 빠져 있었다.
일기를 너머 에세이로 발전해야 합니다. 일기는 좋은 것이나 원석에 불과합니다. 원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더 가꾸고 세공하여 멋진 글로 재탄생 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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